채권자와 인수인이 당사자인 채무인수라면, 채무인의 승낙이 필요하지 않지만 채무자와 인수인이 당사자인 채무인수라면 채권자의 승낙이 필요하다. 채권자를 보호해야 하니까.
제453조(채권자와의 계약에 의한 채무인수) ①제삼자는 채권자와의 계약으로 채무를 인수하여 채무자의 채무를 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이 인수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이해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채무를 인수하지 못한다.
제454조(채무자와의 계약에 의한 채무인수) ①제삼자가 채무자와의 계약으로 채무를 인수한 경우에는 채권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 ②채권자의 승낙 또는 거절의 상대방은 채무자나 제삼자이다. |
이행인수(履行引受)란 인수인이 채무자를 대신하여 그 채무를 이행할 것을 약정하는 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의 이행 인수계약이다. 즉, (면책적)채무인수와는 달리 채무자의 명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행인수의 가장 많은 사례는 다음과 같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매매계약서에 “매수인이 은행대출금 2억원을 대신 갚고 나머지 금액만 잔금으로 지급한다”고 기재하여 기존의 근저당채무를 승계하는 경우는 채무만 대신 갚으면 되고 채무자 명의를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므로 이행인수이다(2001. 4. 27. 선고 2000다69026).
이행인수란 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에 채무자의 채무를 인수인이 이행할 것을 약정하고, 다만 이에 대해 채권자가 승낙하지 않은 경우의 계약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의 기존 소유자인 매도인이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피담보채무를 변제할 책임 있는 채무자였는데, 해당 부동산을 매수하는 매수인이 위 채무를 대신 인수하여 변제하기로 하고, 대신 위 채무액 만큼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하는 경우가 이행인수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때, 근저당권 채권자가 위와 같은 채무 인수에 승낙하였다면, 기존 채무자의 채무는 면제되고, 새로운 채무자만 채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면책적 채무인수에 해당할 것이지만, 채권자가 채무인수에 승낙하지 않은 경우 법적으로 이행인수가 되고, 여전히 기존의 채무자가 채무변제의 책임이 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금전을 빌려줄 때는 채무자의 자력, 신용 등 채무자의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여 빌려주는 것이므로, 함부로 채무자의 변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위와 같은 사례에서 채권자의 승낙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채무자가 변경되지 않는 이행인수로 본다. 만일 채권자의 동의 없이 채무자의 변경이 허용되면, 채권자가 새로운 채무자에게 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행인수의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의 변경에 동의한 적이 없으므로, 채무의 승계는 채무자와 인수인간의 내부관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채권자는 기존의 채무자에게만 채무변제를 청구할 수 있고, 인수인에 대하여는 직접적으로 이행청구를 할 수 없다.
또한, 부동산 매수인(인수인)은 매매 계약시 인수한 채무를 채권자(위 사례에서 근저당권 채권자)에 대해 현실적으로 변제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에서 그 채무액을 공제한 나머지만 지급함으로써 잔금 지급의무를 다하는 것이 된다.
이행인수의 대표적 사례는 위와 같이 부동산 매매 계약시 근저당권 피담보채무액을 공제하기로 약정하는 것인데, 가압류채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고 인수하기로 약정하는 것도 이행인수에 해당한다.
관련하여 법원은, “부동산의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 가압류채무,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를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다른 특별한 약정이 없는 이상 이는 매도인을 면책시키는 채무인수가 아니라 이행인수로 보아야 하고, 매수인이 위 채무를 현실적으로 변제할 의무를 부담한다고도 해석할 수 없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이 매매대금에서 그 채무액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함으로써 잔금지급의무를 다하였다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대법원 92다23193 판결).
앞서 설명한대로, 위와 같은 사례에서 매수인이 매도인의 채무를 인수한 것은 법적으로 진정한 채무인수가 아니라 이행인수에 불과한 것이므로, 매수인은 채권자에게 직접적인 채무변제 의무가 없고, 다만 매도인(기존 채무자)에게 채무승계의 의무만 부담할 뿐이다.
매수인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보면,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에서 그 채무액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하는 것이 주된 채무이고, 이로써 잔금 지급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위 매수인이 인수한 채무를 변제할 의무는 부수적 채무에 불과하다.
따라서, 설사 매수인이 위 채무를 현실적으로 변제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매도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고, 다만 매수인이 인수채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매매대금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매도인이 이를 사유로 계약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매수인이 인수채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매매대금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로는, 매수인이 인수한 피담보채무의 이자를 납부하지 않아, 이로 인하여 매매목적물인 부동산 또는 공동담보로 제공된 다른 부동산에 설정된 담보권의 실행으로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었다거나 개시될 염려가 있어, 매도인측이 이를 막기 위하여 부득이 피담보채무를 변제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관련하여, 법원은 “매매목적물에 관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를 인수한 매수인이 인수채무의 일부인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의 변제를 게을리함으로써 매매목적물에 관하여 근저당권의 실행으로 임의경매절차가 개시되고 매도인이 경매절차의 진행을 막기 위하여 피담보채무를 변제하였다면, 매도인은 채무인수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채권을 취득하는 이외에 이 사유를 들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대법원 2004다13083 판결).
부동산 거래 시에는 임차인이 존재하는 경우 매수인이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인수하고 그 액수만큼 매매대금에서 공제하는 약정을 체결하는 일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추후 매수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긴다면 임차인은 종전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을 지급해 달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요. 실제로 주택의 경우라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입각하여 매수인이 임대인 지위를 당연히 승계하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 채무도 양수인이 승계하게 되며, 종전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택이 아닌 건물의 임대차의 경우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살펴보면 X는 Y로부터 Y소유의 건물 중 지하 1층, 4층을 보증금 10억 원, 5층을 보증금 1억 원에 임차하게 됩니다. 임대차기간 중 Y는 위 건물을 Z에게 매도하면서 Z가 위 보증금채무 11억 원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해당 액수만큼 잔금에서 공제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요. 이후 X는 Z에게 매월 임대료를 지급하고 Z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다고 X에게 통지한 것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X는 임대차가 종료했는데도 불구하고 Z에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받지 못하자 종전 임대인인 Z를 상대로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게 됩니다. 고등법원은 X가 Z에게 임대료를 지급한 사실과 Z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다는 통지를 받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임차인인 X도 Z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거나 임대인의 지위를 인수하는 것에 관해 묵시적으로나마 동의 또는 승낙을 하였다고 추인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따라서 Y가 여전히 임대인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하는 X의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부동산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인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을 면책시키는 면책적 채무인수가 아니라 이행인수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면책적 채무인수로 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채권자 즉 임차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후 임차인의 승낙은 반드시 명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임차인이 채무자인 임대인을 면책시키는 것은 그의 채권을 처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만일 임대보증금 반환 채권의 회수가능성 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의 어떠한 행위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대한 묵시적 승낙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입니다.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인수 사건에서는 Z가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당일 신탁회사와 부동산 담보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준 사정 등을 고려해볼 때 소유권이전등기 당시 X가 Z로부터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이 컸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임차인이 면책적 채무인수에 동의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
이행인수와 병존적 채무인수의 구별 문제는 채무인수 행위에서 매우 중요한 법리이지만, 건물의 보증금반환채무에 관하여는 더 이상 중요하지는 않은 쟁점이 되었습니다. 다만, 2015. 5. 13. 이후 갱신되거나 최초로 체결되지 않은 상가건물임대차계약의 경우에는 아직 이런 문제가 남아있고, 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모든 건물의 임차인은 `대항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는 스스로만이 지킬 수 있으므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임차인은 반드시 법률이 정하는 대항력 요건을 갖추어 스스로를 보호하여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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